작품 리뷰

The Multi-Medium (멀티 미디엄) : 퍼즐 플랫포머 게임으로 표현된 미술관 개인전 전시회

충혈 개구리 2025. 1. 24. 21:15

 

*게임 The Multi-Medium의 전체 구조와 엔딩, 아트등 게임 전반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첫번째 세계, 'Graphite' (흑연 연필)

 

플레이어는 다중 우주로의 탐사를 떠나기 위해 선발된 우주인, 아니 다중 우주인이라고 명명해야겠죠.

아무튼,

 

최초의 다중우주인으로서 선발된 플레이어는 계획대로 워프에 들어가게 되고...

 

뭔가 '장비를 정지합니다, 안 되잖아?' 라고 할만한 시츄에이션이지만, 그런 일 없이 무사히 다중우주로...

 

두 번째 세계 'Colored pencils' (색연필)

다른 세계로의 모험을 떠납니다.

게임의 진행 자체는 일반적인 다른 2D 퍼즐 플랫포머 게임들처럼 옳은 쪽으로 가면서 퍼즐들을 풀고 진행을 하다 보스를 만나 전투 수단이 없는 게임 답게 도장치거나 숨는 것, 추격전의 벌어지는 식의 보스전을 치룬 뒤,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 원을 얻어 또 다른 다중 우주로 가는 식입니다.

3번째 세계 'Charcoal'(목탄화)
4번째 세계 'Watercolor' (수채화)

 

각각의 다중 우주, 아니 다중 우주라는 말로 은유된 미술 기법은 각 세계의 이름 자체가 미술 재료 또는 기법으로 명명됨으로서 그 의도를 직접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드러냅니다.

이 '게임의 의도'를 얘기하기 위해 우선 게임의 엔딩에 대해 먼저 언급하겠습니다.

이 작품의 엔딩은 마지막으로 3D 세계에 온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지나온 다중 우주들이 그 각각의 기법들로 그러져있는 미술 작품들을 순서를 거꾸로 감상하고, 자신이 출발한 세계가 그려진 작품 속으로 들어가 그림이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결말에 도달하는 것의 도전과제 이름은 해석.

해석을 하라는 의미인지, 이 결말 자체가 해석이라는 건지가 조금 불명이지만.

일단 이 결말은 조금 이상한 것이, 그냥 보기에는 게임 내의 서사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끝났습니다.

 

이 작품의 서사는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질 못해 '나는 어째서 이 다중우주들을 떠돌고 있는가?' 라는 혼란에 빠지고, 점성술에 따라 그 답을 '나는 다중 우주를 구하는 영웅이라는 역할을 맡은 자'이기 때문이다.' 라고 하여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에서 지배층에 의해 억압받는 종을 해방한다는 대업을 이루지만, 그 다음과 다음에 방문한 세계에서는 일을 망치거나, 무력한 개인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세상이 멸망하는 꼴을 그저 비켜보게됩니다.

그 후 공허한 점 선 면의 추상의 세계에서 고민하며 떠돌다가...

9번째 세계 과슈

이딴 소리나 하고 자빠졌죠.

이러고 나오는 것이 좀 전에 말한 엔딩입니다.

제가 이걸 보고 하는 생각은, 아하! 이 작품은 서사고 뭐고 말아먹고 자신의 미술 아트를 보여주고 전시하기위한 미술 전시관 개인전으로서 게임이라는 매체를 고른거구나!

라는 생각을 먼저 했지만,

 

역시 일단 내용 자체만으로 봐서, 생각하면 방황하던 주인공이 여러 다중 우주들이 연결된 공간에 도착해서, 또는 자신이 지나온 세계들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원하던대로 본래 자신이 있던 세계로 돌아갔다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야하나 싶지만 그래서는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겁니다.

방황의 답이 회귀가 되는 것도 물론 가능은 하지만 그것을 납득가능한 경험이 아니라, 전시관을 은유한듯한 공간을 통해 전달해서는 의문만이 남을 뿐 서사가 완결되었다고 보긴 어렵죠.

5번째 세계, 아크릴

 

 

그렇기에 이 기묘한 엔딩의 의미는, 도전과제의 이름인 '해석'처럼 이 작품은 서사같은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고 전시관이라는 형태로 직접적으로 묘사된, 마지막 세계 자체에 작품의 의미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챕터의 이름은 3D공간 같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다른 세계를 마칠때마다 달성되었던 도전과제의 이름이 곧 그 세계의 이름이었던 것처럼 '해석'인거죠.

다시 말해 전시관을 돌아보면서 걸려있는 작품들을 보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의 해석'이라는 겁니다.

 

즉 플레이어가 한 일은 '전시관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한 것과 같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개발자 자신의 아트를 전시하기 위한 형태로서 게임을 고른 것이고, 일종의 전시회를 게임으로 연 것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전시했다는 부분은 그저 사실일 뿐이고, 이것을 게임 경험으로 제시함으로서 이 작품에는 하나의 의미가 더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6번째 세계 펜과 잉크, 그리고 개발자의 전작 BirdGut이 그러져있는 이스터에그

 

이 작품은 마지막에 각 다중 우주, 우리가 경험한 것과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림'으로 비유하면서 우리의 게임 플레이 경험이 곧 그림을 보면서 감상하는 행위였다는 말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말을 뒤집자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는 그림을 보면서 감상하는 행위와 같다.' = 게임 플레이란 곧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다. 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거죠.

 

물론 이 메세지가 성립하는 기반에는, 이 작품에 개발자의 깊은 미술가로서의 능력을 증명하는 훌륭한 아트들이 기반에 깔려있고 그것이 나름 괜찮은 게임 플레이와 함께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트를 보자면 이 작품은 훌륭하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운 배경과, 놀라운 음악을 들려주는 작품입니다.

8번째 세계, 콜라주

 

아까부터 조금씩 이 작품의 캡쳐를 보여주고 있는데, 물론 이 캡쳐들로는 당연히 게임의 전부를 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편린은 조금이라도 전달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각 세계의 이름은 당연히 그냥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모든 것이 그 기법/재료로 창작된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콜라주도 이름대로 사진이나 종이를 잔뜩 사용해 만들어 소름돋을 정도로 그럴듯한 세계를 만들어냈고, 다른 세계들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죠.

 

일단 제목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작품의 레벨 구조는 명백히 퍼즐 플랫포머 게임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게임에서는 없던 새로운 퍼즐이나 참신한 퍼즐이 나오는 그런 게임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디에서나 가장 많이 쓰이는 레버 장치부터 해서, 갈고리 훅, 탈것 활용, 여러 캐릭터를 이용해 푸는 퍼즐, 빛과 어둠의 대비를 활용한 퍼즐 등 다 어디서 한 번쯤 본 것같은 클리셰적인 기믹들을 그대로 사용하죠.

물론 이 게임만의 형태로 표현하고자하는 노력은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기믹이나 퍼즐을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직관적으로 해답이 바로 보이고 금방 풀 수 있는 것들만이 나오죠.

 

하지만 이 작품은 각 레벨(세계)마다 이전의 기믹은 버린 다음 새로운 기믹을 제시하고, 그것을 또 지루하지 않을 만큼만 사용한 뒤 또 다음 기믹으로 넘어가는 식이기에 퍼즐의 깊이가 다소 얇아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주기가 빠르다보디 얇다는 것을 알기 전에 새로운 재미가 제공되어 이전의 것은 신경쓰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슬슬 해당 장소와 퍼즐 기믹에 익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어느새 보스전이 시작되어있고, 보스전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기믹을 학습시키고, 변주를 제시하고, 점점 복잡한 퍼즐을 제시하다 보스전에서 지금까지 그 레벨에서 사용한 기믹을 활용하게 하는 퍼즐 게임 다운 기믹 학습과 활용의 구조는 매우 뛰어나서 나무랄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분명 혁신적인 퍼즐 게임은 아니지만, 퍼즐 플랫포머의 클리셰에 대해 매우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퍼즐의 가벼움은 플레이어의 놀이의 재미를 유지시켜 흥미를 잃지 않게 하면서도 플레이어가 아트의 감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겠죠.

 

그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이 게임이 퍼즐 플랫포머를 하다보면 피곤하거나 짜증나게 되는 부분들을 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대처해놨다는 겁니다.

퍼즐을 풀던 중 실수하여 죽는 일이 있어도 건드려놨던 퍼즐의 진행도가 저장된 상태에서 부활하기 때문에처음부터 다시해야한다는 스트레스 같은 것도 없죠.

또, 구체적인 예시로 보통 뭐랑 같이 다니면서 퍼즐을 풀어야할때는 자꾸 따라오던게 사라지거나,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등의 불편한 상황이 종종 생기는 게임들이 있는데 이 게임에서는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동으로 따라와야할 때'랑 '자동으로 따라오면 안될때(그 자리에 계속 붙어있어야하는 때)'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움직여서 놀라웠습니다.

한 레벨에서 쓰이고 더 안쓰는 것인데도 플레이어를 따라다니는 알고리즘을 정교하게 구현해둔 것입니다.

 

해석

 

멀티 미디엄은 게임 플레이를 전시관에서의 미술 작품 감상에 비유해, 게임 플레이가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며 그 가치를 인정하는 메세지를 담은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 혼을 넣어 제대로 성립시키는 것은 이 작품을 창작한 이의 깊은 미술적 능력를 기반으로 한 뛰어난 아트들과, 퍼즐 플랫포머의 클리셰적 기믹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놀이의 좋은 합주였습니다.

 

개발자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다른 작품의 리뷰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