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 : 리판타지오의 주요 반전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꼭 필요한 부분외에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으므로 게임을 엔딩까지 플레이 한 뒤 리뷰를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메타포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겉으로 보이듯, 주인공이 각지를 모험하며 동료를 모으고, 숙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원하는 영웅왕이 된다는 왕도적인 서사입니다.
우리가 이 판타지 이야기에 깊게 몰입하여 즐긴 뒤에 최종보스를 쓰러뜨리면, 게임은 우리가 이야기 속에서 이룬 일들, 본드의 진행상황이나 서브퀘스트, 드래곤의 퇴치 상황 같은 것에 따라 우리에게 적절한 성취감을 제시하는 에필로그를 보여주고 이 작품을 재미있는 판타지로서 완결하고 끝내려는 듯 보이죠.
거기까지도 충분히 즐겁고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엔딩을 본 뒤에 나오는 세 줄의 문구는 이 작품의 내용을 뒤집어 놓습니다.
"...머나먼 타향의 사람이여.
그대에게 분명 이 여행은 환상에 지나지 않겠지.
하지만 부디 이 환상같은 여행의 기억이 그대의 현실에서도 찬란한 희망이 되기를..."
듣기에는 게임이 엔딩에 도달했으니 판타지에서의 모험을 마친 플레이어를 떠나보내며 축복하는 말 같지만,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문구는 이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있어서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직접적으로 선언하죠.
판타지가, 나는 판타지일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말이 게임에서도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종반에 가까워졌을때, 모어는 이 이야기에서의 환상 속 세계를 현실로 생각하고 여기서 살아가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자고 주인공에게 제안하지만, 주인공은 이 장소는 현실이 아니라고 그를 부정합니다.
환상 소설 속에 그려진 세계는 이상향이 아니라고 하면서요.


이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환상 소설이 멸망한 구세계의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이상이 아니라는 점이고, 하나는 환상 소설은 어디까지나 환상 소설일 뿐. 비록 환상 소설이 이상을 제시하더라고 그 자체로는 현실이 아니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닙니다.



모어, 아니 유트로다이우스 5세는 힘든 현실에 맞서지 않고, 국정을 내버려둬 폭주하는 신성교가 자기 마음대로 활개치도록 내버려둔채, 자신이 그린 환상 이야기 속으로 도피한 인물입니다.
이상을 이루기 위한 꿈을 담아서 쓴 책이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는 없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모어는 부모된 자로서 자식의 안전을 위해 주인공을 설득하려하지만,
주인공은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모어가 제시하는 환상 속으로의 도피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하지만 모어가 말하듯, 주인공.
왕자는 유트로다이우스 5세가 쓴 환상 소설의 애독자입니다.

돌아보면 주인공이 모험에 떠나게 된 계기도,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도 전부가 환상소설에서 출발한 일입니다.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꿈을 꾸게 된 계기 자체가 환상 소설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분신을 만들어 자신의 영혼을 모험 보낸 것또한 환상 소설이 이뤄준 마법이었죠.
그렇지만 환상은 환상. 현실이 아닌 겁니다.
그렇기에 환상 소설 그 자체가 이상인 것도 아닙니다.
돌아보면 제일 처음 갈리카와 같이 환상 소설을 읽었을때, 갈리카는 '현실은 소설과는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동료들과 같이 환상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왔던 이야기처럼, 그리고 이 이야기 속의 환상, 진짜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알다시피 이 세계는 이 세계 나름대로의 문제가 존재하죠.
즉 환상에 이상을 꿈꾸게 하는 힘은 있어도 환상이 이상 그 자체인 것은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환상을 꿈꾸는 것과, 환상으로 도피하는 것은 사로 다른 일이라는거죠.
그것을 각각을 상징하는 주인공과 모어의 반목으로 보여줍니다.
이제 앞으로 돌아가봅시다.
이 작품은 자신을 '환상'이라고 부릅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진짜 현실을 묘사한 책이 환상 소설이라면,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이 게임은 환상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이 작품의 내용 전부를 입장을 환상 소설을 읽는 주인공에서, 이 환상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로 뒤집어서 생각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메타포, 즉 은유임을 생각해보면 이 작품을 '환상'이라 일축하는 작품의 마지막 문구야말로 작품이 은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열쇠,
이 환상이 은유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의 키포인트가 됩니다.
죽어가던 왕자가 환상 소설, 판타지에서 희망과 이상을 얻어, 현실을 바꿀 가능성에 마주하는 여행을 하여,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쌓고 자신의 능력을 길러 최후에는 영웅왕으로서 즉위하는 주인공의 모험.
이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이 판타지 게임을 즐기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플레이어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환상 소설의 서로다른 종족이 없는 세계에서, 현실의 모든 종족들이 화합하는 이상을 그린 것 처럼,
'환상 소설에서 영향을 받아 왕자로서 현실을 이상에 가까운 세계로 바꾸고자' 한 주인공이 은유하는 것은, '환상 게임에서 영향을 받아 개인으로서 자신의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현실의 누군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환상 소설이 절때 그 자체로서 이상은 아닌 것 처럼, 판타지의 역할과 의미는 환상에 빠져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에서 이상과 희망이라는 힘을 얻어 현실을 살아가는 것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환상은 그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는 겁니다.
현실을 살아갈 의지와 희망, 현실을 바꿔나갈 이상.
판타지는 그것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왕자에게 환상 소설이 없었다면 세계는 바뀌지 않았을 겁니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황상 환상 소설이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루이의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루이또한 환상 소설을 읽어 꿈을 품었었던 인물이고, 환상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그가 꿈을 품을 일도, 꿈을 잃은 끝에 증오를 끌어안을 일도 없었겠죠.
이 작품에서 꿈과 이상을 제공하는 희망을 보이는 소재는 일관되게 환상 소설입니다, 동시에 환상 소설은 결국 환상일 뿐이라는 태도도 일관되게 드러나죠.
이야기는 환상 소설 없이는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판타지가 제시하는 사람의 꿈과 희망, 이상.
플레이어의 현실에서의 이야기도, 환상 게임을 하면서 꿈과 이상을 얻고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리고 그것이 판타지로 도피하는 행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
이것이 이 작품이 겉으로 보여주는 판타지 이야기의 뒤에서 다루는 테마이고,
판타지가 스스로를 환상이라 일축한뒤, 역설적으로 그 환상에 불과한 것의 가치를 이야기와 게임 플레이 전체에서 은유적으로 논하여 전달하는 메타포의 뒷면에서 다루는 주제입니다.

메타포 이전에도 픽션이 스스로를 픽션에 불과하다고 말한 뒤에 픽션의 가치를 논하는 작품은 있었고,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한 얘기도 이 은유된 내용만으로는 전혀 끝나지 않습니다.
메타포는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부분이 있고, 루이와 왕자의 대립으로 환상을 믿는 이과 믿지 않는 존재의 대립도 그리죠.
본래 은유된 주제와 겉으로 드러나는 주제, 이 작품이 과거의 작품에 비해 무엇을 해결했는지 까지 한 번에 다루려고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글의 길이가 늘어나버려서 여러편으로 쪼개기로 했습니다.
그럼 다음 리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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