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들을 모아놓고 재밌게한 추리게임 하나를 꼽아보라고 하면 역전재판이 언급되지 않을리가 없죠?
그만큼 역전재판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작품이고 캡콤의 주요 프랜차이즈이자 여러 기기로 발매된 인기 게임시리즈입니다.
변호사(탐정)인 나루호도에게 몰입해서 각 에피소드마다 주어지는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에서 진상을 밝혀내 사건을 해결하고 의뢰인을 구하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역전하는 재미는, 다른 게임에서는 제공하지 못하는 역전재판만의 재미죠.
그런데 사실 역전재판이 추리게임으로서 잘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역전재판은 일단은 추리게임으로 불리고 있고 게임의 스토리도 매 에피소드에 나오는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지만...
이 게임에서 제시하는 추리라는 놀이가 온전히 플레이어가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추리인가?
라고 질문하면 좀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플레이어가 진상에 도달하지 못해도 개별적인 모순점을 맞추거나, 선택지를 잘 때려맞추는 등 게임에서 그때그때 주어지는 퀴즈를 풀기만 해도 나루호도와 미츠루기가 알아서 자기들끼리 진상을 찾아내 다 설명해주기 때문이죠.
물론 미리 사건의 진상을 머릿 속에 그려놓고 답을 고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증인들의 증언이나, 플레이어 측이 입수하지 못한 증거, 시체에 관한 정보등 수 많은 부차, 중요 정보들이 재판중에 공개되기 때문에 재판파트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건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한 번 재판파트를 끝내고 추가적인 수사파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죠.
그렇기 때문에 역전재판은 온전히 플레이어가 추리를 해서 진상을 찾아내는 작품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를 자연스럽게 '추리하는 이야기'의 흐름에 흡수해서 그 과정중에 퀴즈를 준비한 게임이라고 해야겠죠.
크게 쳐주면 플레이어의 추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게임, 낮게 치면 플레이어를 추리하는듯한 착각을 빠뜨리게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역전재판의 가장 큰 장점이자 이 게임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서 나오죠.
역전재판은 게임의 캐치프라이즈인 '엄마도 할 수 있는 추리 게임' 답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작품입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기믹이 바로 마니아들이나 즐길 법한 어려운 난이도의 온전히 플레이어의 힘만으로 풀어야하는 추리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개별 퀴즈를 풀면서 자신이 사건을 밝혀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임구조죠.
지금까지 지적한 역전재판의 추리게임으로서는 미달인 부분들은 이 작품이 대중을 위한 추리게임을 만들고자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대로 장점으로 변모합니다.
역전재판의 구조적인 특징들은 대중적인 추리게임을 만들기 위한 장치일테니까요.
역전재판은 추리의 질로서는 의심스럽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추리 퀴즈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호평할만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풀 수있고 자신의 힘만으로 푸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퀴즈를 풀어내는 것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한 플레이어에게 사건을 해결한 것 같은 성취감을 제공하지만, 게임이 추리의 과정과 내용을 그냥 스토리로 제공해버린다면 역전재판이 좋은 추리 놀이를 제공한 것만으로 플레이어의 몰입과 재미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전재판에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른바 메인스토리격 사건들이 있음에서 알 수 있듯,
역전재판은 추리 게임이 아니라 비주얼 노벨로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역전재판이 그럼 비주얼노벨로서 좋은 게임이냐고 물어본다면 그것도 대답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몇몇 사건들이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레전드 에피소드들을 꼽을 수는 있겠지만 123편 전체가 그만큼 뛰어나냐고 물어보면...
안녕히 역전이나 화려한 역전같은 편은 그야말로 시리즈 최고 고점들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개별적인 사건이거나 떡밥을 좀 뿌리고 마는 정도에 그칩니다.
역전재판은 시작부터 결말까지가 철저히 설계된 스토리라기 보단, 매번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오면서 옵니버스식의 에피소드를 전개해 그 안에 메인스토리 라인을 깔아놓고 몇몇 에피소드를 좀 잇는 정도에 그치죠.
그리고 그 스토리의 내용도, 법정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 같은 소재를 끌고왔지만 실제로 나루호도가 하는 일은 의뢰인의 사정을 듣고 탐정질과 별 다를 것 없고, 검사가 하는 일은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몰아세우기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와중에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처럼 보이는 변호사란 무엇인가, 검사란 무엇인가 뭐 이런 얘기들도 작품의 구조적 문제때문에 퇴색됩니다.
어차피 안녕히 역전을 경험한 이후에도 후속작에서 여전히 나루호도는 그냥 의뢰인을 믿는다 이러고 있고, 미츠루기도 검사로서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려고 한다는 행동을 바꾸는게 아니죠.
시리즈를 이어나가기 위해 완성된 주제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는 작품을 보고 그 서사가 뛰어나다고 평가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역전재판은 뛰어난 추리 놀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스토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양쪽으로 각각 바라보면 애매한 게임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하지만 애매한 추리퀴즈와 애매한 스토리가 합쳐지니 가볍게 즐기기에는 좋은 게임이 되었죠.
사실 그럭저럭 이야기에 몰입도 하면서 가볍게 추리를 즐기기에는 역전재판만한 게임이 또 없습니다.
웃긴 만담과 시종일관 나타나는 캐릭터들의 오버액션, 특이한 외모와 특징들이 얘가 누구고 뭐하는 사람인지 누구나 똑똑히 기억하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사건 내용의 완성도, 변호사의 반동인물인 검사를 잘 만들었기에 가능한 재판에서 '역전'하는 쾌감.
실제로 어떻든 간에 플레이어에게 추리하는 듯한 몰입은 선사한다는 점, 감정을 자극하는 인물들의 사연, 스토리.
그리고 변호사와 검사라는 역할, 알기 쉬운 배경과 튜토리얼로 친절하게 퀴즈푸는 법을 알려주는 구조는 역전재판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추리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전재판에서는 주제를 잘 전달하는 깊은 서사도, 플레이어의 탐구를 최대한 발휘해야하는 추리 놀이도 찾아볼 수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에 추리라는 장르가 가진 벽을 허물고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가볍고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습니다.
역전재판의 방향성 자체가 누구나 이 추리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 그 목적은 확실히 이룬 작품이라고 생각 할 수 있죠.
역전재판은 캡콥이라는 대기업에서 만드는 대중적인 추리 비주얼 노벨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작품입니다.
역전재판은 절때 뛰어난 비주얼 노벨도, 뛰어난 추리 게임도 아니지만 그 대중성의 설계와 가벼운 재미는 인정할만하죠.
그렇다면 역전재판은 그냥 즐기기 좋은 추리가 섞인 비주얼 노벨 게임,
이겠죠?
그리고 역전재판의 진짜 문제는 바로 거기서 드러납니다.
주제가 이상해진다해도 그 뒤에 나오는 새로운 스토리가 재밌으면 또 몰입해서 즐길 수 있으니 거대한 문제는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애초에 이 작품에서 주제는 작품을 그냥 재미있게 즐기는 부분에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추리 또한 깊게 즐기고 싶다면 게임에서 제시하는 퀴즈와는 별개로 스스로 원하는 만큼 노트에 정리해보거나, 생각해보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게임의 선형적 구조상 플레이어가 이미 어느정도 진상에 도달했거나 먼저 깨달은 점이 있다고 해도 플레이어가 그걸 말할 수 없다는 건 문제가 되죠.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상호작용은 정해진 스토리가 진행되는 도중에 나오는 퀴즈에 플레이어가 답하는 것 뿐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이미 도달한 대답을 나루호도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답답하기만 하게 되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플레이어는 더 이상 나루호도에 몰입 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나루호도가 말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말하려던 것도 바로 그거다.'라는 식으로 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내가 아는 것을 나루호도가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 겁니다.
나와 나루호도가 서로 다른 존재임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니까요.
그렇기에 역전재판에 대한 평가를 보다보면 서순이 불합리하다던가, 도중에 답답한 부분이 있다던가 같은 얘기가 종종 나오죠.
플레이어가 이미 깨달은 부분에 대해 미츠루기와 나루호도가 신나서 설명하는 것도 그다지 안지루한 부분은 아닐텐데, 그걸 나루호도가 몰라서 곤경에 빠지는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답답하고 짜증이 날 수 밖에 없겠죠.
물론 모든 플레이어가 게임의 의도대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작품이 '역전하는 쾌감'을 준비한 것이겠지만... 결국 모든게 정해진 대로 진행되는 비주얼 노벨에 추리라는 놀이를 도입한 순간 이런 한계는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역전재판은 대중적인 추리게임으로서 잘 만든 게임이지만, 비주얼 노벨과 추리 게임 각각의 면에서 단점과 부족한 점이 존재하고, 스토리가 정해진 대로 진행된다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놀이와의 괴리는 해결하지 못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대역전재판에서는 그 괴리를 다소 해결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럼 다음 리뷰로 또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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