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리뷰

단간론파 리뷰 1 : 추리 할 수 없는 추리를 제시하기에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추리 게임.

충혈 개구리 2025. 2. 19. 21:10

*이 리뷰는 단간론파 본편의 핵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설명

단간론파는 2010년에 나온 스파이크 춘 소프트의 추리게임 입니다.

여러명의 초고교급이라는 이름이 붙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고등학생들이, 클로즈드 서클에 갖혀서 모노쿠마에 의해 탈출이라는 보상을 건 서로 간의 살인을 강요받고, 살인이 벌어지면 학급재판을 통해 범인을 밝히는 추리물 작품이죠.

국내에서는 과거의 게등위 뉴 단간론파 V3 등급분류 거부사태와 근래에 유튜버에 의해 폭로된 당시 사건의 회의록 관련 얘기가 널리 퍼져서,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게이머라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겁니다.

 

 

 

단간론파가 추리게임으로서 제시하는 놀이

일단 단간론파는 추리게임이지만,

이 작품도 역시 플레이어가 게임과 상호작용 할 수 있는 일은 학급재판이라는 이름을 한 토론 중에 주어진 퀴즈에 답하는 행동 뿐입니다.

 

고토다마 제시나 선지중에 답을 맞추는 것, 인물을 제시하는 것은 그냥 퀴즈이니 넘어가고,

그외에 단간론파 1편에 학급재판중 플레이어가 풀도록 주어지는 상호작용, 미니게임의 종류는 논스톱 논의, 섬광 애너그램, 머신건 토크배틀, 클라이맥스 추리 이렇게 총 4가지입니다.

논스톱논의

이 중 논스톱 논의는 기본적으로는 적절한 고토다마를 골라 논의중 다른 이의 발언에서 모순점을 찾아 쏘아맞추는 퀴즈지만, 행위 자체로는 논의중에 반론을 하는 것이라고 해야겠죠.

섬광애너그램

섬광 애너그램은 정답을 떠올려 빈칸의 단어를 배열하는 것으로 답을 맞추는 미니게임입니다.

머신건토크배틀

머신건 토크배틀은 리듬게임을 통해 상대의 라이프를 깎아낸 뒤 상대의 주장을 정면에서 증거를 통해 반박하는 식이고,

클라이맥스 추리

 

클라이맥스 추리는 지금까지 논의를 통해 밝혀낸 진실을 화면의 그림 중 빈 곳에서 그곳에 들어갈 그림을 골라 넣는 퀴즈입니다.

 

일단 이 퀴즈와 미니게임들이, 토론 진행중 플레이어가 대답(상호작용)할 수 있는 상황을 다양화하기는 하겠지만, 플레이어가 자신의 힘으로 진상에 도달해서 맞추는 것일까요?

 

위에서 설명한 요소들이 그냥 단순한 개별적인 퀴즈가 아니라 추리해서 맞추는 것이라고 하려면 물론 플레이어가 사건을 사전에 추리하는 것이 가능해야겠죠?

 

단간론파는 일단 사전에 수사중 고토다마로 정리되는 증거가 꽤 많고, 그것들을 조합하면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과 흐름, 핵심 트릭 같은 것은 충분히 밝혀낼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의 단간론파 중계 1~5 참고)

 

물론 미리 밝혀내지 않아도 학급재판중에 그때 그때 생각하면서 답을 알아내도 괜찮고, 게임을 그냥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보통이고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진상에 대해 사전에 추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걸 알고 맞춘건지 그냥 때려맞춘건지 구분하는 건 개인차의 문제가 되고, 게임은 온전히 추리를 통해 풀려고 하는 것도 가능한 구성을 제공한거니까요.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범인을 밝혀낼 단서는 애매하거나,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오와다의 호칭건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화면에서 플레이어가 보고 들을 수 있고, 또 추후 매우 중요한 증거나 근거가 되지만 고토다마화되지는 않는 내용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2챕터에서 토가미 뱌쿠야가 했던 현장 위장공작의 근거가 된, '그는 사건 현장이 여성 탈의실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를 증명하는 근거로서 '왜 그가 수사 시작때 여성 탈의실부터 들어갔는가?'가 제시된다던가, 2챕터에서 오오와다 몬도가 후지사키가 남성임을 학급재판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증거로서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구분해서 호칭하던 몬도의 후지사키에 대한 호칭이 어느샌가 바뀌었다던가. 3챕터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중에 괴한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것은 항상 세레스였고, 그로 인해 인원들이 분단되거나 이동하거나 했다는 점들이죠.

 

왼쪽은 단간론파 1편의 고토마다 목록, 오른쪽은 대역전재판1편의 증거품 목록

 

이건 사실 추리 게임이기에 존재하는 특징을 역이용한 장치입니다.

추리게임이란 것들은 중요한 증거나 정보가 나오면 항상 메뉴에 기록해주잖아요?

그렇기에 플레이어의 주목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쏠리게되고, 기록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요한 근거나 증거가 될 만한 일들을 은근슬적 놓칠 수 있게 되는거죠.

범인의 정체등 그 사건에서 중요한 진상과 연결되는 단서나 증거들을 직접 경험시키거나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게 증거라고 하면서 플레이어가 그 요소들이 중요하다고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힌트처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재판중에 드러나도 아예 추리할 수 없었던 요소처럼 느껴지게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놓친 것으로 느껴지죠.

단간론파는 사건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수사중에 찾을 수 있게 해 게임에서 의도한 부분까지는 막힘없이 추리 할 수 있게 하고, 범인의 정체같이 핵심적인 트릭이나 정답은 재판중에 공개되는 정보나 재판중에 발생한 일, 다른 인물의 발언을 통해 이전에 주어졌던 정보가 강조되는 것을 통해 추리하게 하면서, 학급재판 전에는 알 수 있는 것 의도적으로 제한합니다.

 

위의 호칭문제는 오오와다가 이 '범인만 알 수 있는 정보'를 말해버린 뒤에 나오면서 그를 범인으로 확정짓는 설득이 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아예 새로운 정보가 나오더라도 이전에 밝혀진 사실이나 이미 주어졌던 정보와 엮이면서 나오긴 하지만, 당연히 해당 부분을 확신하게 만드는 쪽은 보통 새롭게 주어진 정보 쪽입니다.

아까 언급한 '몬도의 호칭변화'나 '토가미의 여성 탈의실부터 확인', 뭐 이런 것들은 좀 수상하기는 하지만 몬도가 후지사키와 개인적으로 친해져서 알고 있었다던가, 토가미가 그냥 변태라서 사건을 핑계로 여성 탈의실부터 들어가보고 싶었다던가 같은 식으로 변명해도 말이 안되고 할 수는 없죠.

몬도의 '파란색 운동복' 언급, 마이조노 사야카가 쿠와다에게 남긴 쪽지 같은 재판중에 일어난 행위나 새로 제시된 증거가 기반이 되니까 이 근거들도 제대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겁니다.

비록 실질적으로는 학급재판 전에 게임이 숨기고자 한 부분을 알기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눈치챘다고 해도 매우 수상하다, 쎄하다 정도에 그치게됨에도 불구하고요.

결국 이러한 것들이 플레이어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학급재판이란게 추리를 다 끝내고 정답을 제출하는 게 아니라, '추리 하는 중'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딱히 다같이 협력해서 수사한 것도 아니니 다른 인물이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제시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거죠.

그리고 그것이 원래 내가 알아챌 수도 있었던 부분이라면? 이미 알고 있던 것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밝혀낸 정보들과 이어진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겁니다.

그냥 단간론파를 쭉 즐겨기면서는 절때 어색하거나 이상하다고 느낄 것들이 아닌거죠.

 

키리기리가 자신이 발견한 쪽지를 다른 이들에게 제시하는 장면

 

그런데 단간론파는 왜 이런식으로 구성되어있는 걸까요?

예를들면 첫 번째 사건때 학급재판중 주어진 증거인 마이조노의 쪽지같은 건 학급재판이 이루어지기 전에 제시했어도 되는 거 아닐까요?

왜 단간론파는 핵심적인 증거를 굳이 수사중에 제시하지 않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단간론파는 최후에 정답을 제시하면 되는 추리 소설과는 다르게, 플레이어가 추리하는 경험을 제시하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추리소설을 읽고 추리하는 것은, 그 과정과 결과 자체가 작가와 독자간의 지적 게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지만

단간론파 같은 추리 게임은 그런 추리 행위의 과정을 플레이어가 즐길 수 있는 놀이로서 제시해야하는 게임입니다.

단간론파는 그 추리 파트를 학급재판이라는 퀴즈 놀이로 제시하는거죠.

그런데 여기서 이미 범인이 누군지 다 알고 사건의 모든 것을 궤뚫어본 상태로 퀴즈를 맞추는게 재미있을까요?

아니면 범인이 누구인지 아직 전혀 모르겠는데 퀴즈를 맞춰나가면서 연출과 함께 서서히 사건의 숨겨진 진상들이 드러나는게 재미있는 경험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 자체는 취향에따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단간론파가 제시하는 재미는 후자입니다.

그리고 단간론파가 취하는 형식 또한 후자에 맞춰져있다는거죠.

 

사건의 피해자인 마이조노가 선빵을 계획했다는 걸 미리 알았어도 충격적이었겠지만, 원래 살인을 계획한게 그녀라는걸 모르고 있다가 학급재판 중 적절한 연출과 대사와 함께 깨닫는' 쪽이 더 충격적이겠죠?

 

예시로 이렇게 따지면, 어째서 1챕터에서 살인을 계획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피해자가 된 마이조노임을 증명하는 핵심적인 증거가된 재판중에 공개되었는가, 같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숨겨 추리 가능성을 없앴다는 것으로 보고 끝나지 않고,

일부러 이것을 반전 요소로서 숨겼다가 드러내서 앞서 마이조노의 살인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의도치않게 협력하면서 진범까지 될뻔한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그렇게했다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은 시체의 상황이나 금박 모조검의 상태 같은 다른 증거들로도 어느정도 추리해서 예측 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이러한 정보가 후에 쥐어져도 이미 주어졌던 증거들에 보태서 사실을 확정 할 수 있는 요소로서 만들었습니다.

연출과 추리요소로서 말이 되게끔 하는 구조를 동시에 챙기는거죠.

 

단간론파는 플레이어가 진실을 찾기 위해 사고, 탐구하는 추리 놀이라는 경험을 제시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사전에 의도적으로 사건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의도된 모순으로 인해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연출과 의도를 통해 더 극대화되었다는 점이야말로, 단간론파에서 제시하는 게임 속 놀이로서의 추리의 매력일겁니다.

 

나중에 대역전재판 리뷰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 부분은 역전재판과도 비슷하죠. 역전재판도 크게 보면 추리 가능성을 포기하는 대신에 몇 번이고 재판에서 역전하는 쾌감을 잡으려고 한 것이니까요.

 

 

 

선형적 전개의 한계가 추리의 재미와 몰입에도 영향을 주는가?

하지만 이렇게되면 단간론파도 결국 선형적인 추리게임으로서의 한계를 가진다는 것 아닐까요?

의도적으로 정보를 제한하고 플레이어를 의도 속 레일에 태운다면 플레이어가 사전에 추리를 하던 말던 별 의미없는 일이 되는 거 아닐까요?

이전에 역전재판 리뷰에서 지적한 '역전재판에서는 진행이 선형적이기 때문에 사전에 플레이어가 등장인물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진상에 다다르면 서순의 불합리함이 느껴진다.' 같은 부분처럼, 단간론파에서도 그런 것을 느끼고 몰입이 깨진다던가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아뇨,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역전재판이 선형적이여서만 발생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검사와 변호사간의 갈등구조가 더 핵심이죠. 계속되는 '역전'으로 인해 나루호도는 몇 번이고 위기에 빠지지만 플레이어는 나루호도가 위기임이 아닌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나루호도는 마치 자신이 진짜 위기인 것 처럼 당황하고 위기에 빠져버리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나는 이미 상대측 주장이 아무것도 아닌 걸 알고 있는데 이 놈이 지 혼자 당황하고 땀흘리고 있는 것 만큼 답답한 상황이 또 없다.

 

단간론파는 애초에 말만 재판이고 대등한 관계를 가진 초고교급 학생들끼리 토론하는 형식을 취하니, 존재하는 갈등구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과 범인이 아닌 나머지 모두라는 구도가 있을 뿐, 딱히 주인공이 나루호도 같은 위기에 처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전원 다 같이 '범인을 찾지 못하면 처형당한다.'는 위기에 처해있기에, 토론의 목적은 '논리적인 논의를 통해 범인을 밝혀낸다.'가 되고, 그 때문에 주인공에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이라도 나오지 않는 한 플레이어 측이 위기라고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는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그런 상황이 나오더라도,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범인의 정체같은 것은 항상 게임에서 의도한 때가 되기 전까지 확정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웬만하면 범인이 누군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진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플레이어가 퀴즈에 대답을 하는 순간은 항상 토론을 이끌어나가는 행위가 되죠.

그래서 제시된 정보들을 통해 미리 사건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해두는 것은 역전재판에서는 재판중 답답해질 수 있는 요소가 되지만, 단간론파에서는 좋은 무기이자 재미 요소가 됩니다.

모든 퀴즈가 제한시간을 가지고 있고 앞서 말한대로 피지컬도 요구하니, 퀴즈가 주어진 순간 바로 답을 알고있다면 고생하다가 게임오버가 되어 몰입과 집중이 끊길 일이 없겠죠?

그리고 논스톱 논의에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다른 사람이 모르거나 잘못알고있는 경우, 또는 거짓된 주장을 펼치는 경우에, 플레이어가 그 주장에 대한 완벽한 반론을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고토다마(말탄환)으로 논파하는 것은 쾌감넘치는 경험이 될 것이고 말입니다.

 

 

 

 

단간론파는 선형적인 게임이지만, 플레이어가 얼마나 열심히 추리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그대로 막힘없는 진행과 퀴즈를 정확하게 맞추는 쾌감으로 이어지기에 오히려 추리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주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역전재판의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인 등장인물들보다 먼저 사건을 파악하는게  몰입에 방해된다던가 같은 말도 안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일단 이번 리뷰는 여기까지,

단간론파 리뷰 1편에서는 이 게임이 제시하는 추리 놀이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 글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은 단간론파의 서사는, 리뷰 2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리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